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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가능한 창작 시리즈/[칼럼 & 에세이]12

물질 이전의 감정, 폐기물이 되기 전의 시간에 주목하기 사물이 폐기물로 분류되기 전, 그 물질에 깃든 정서적 역사와 정체성에 대한 철학적 고찰 사물의 감정적 기원에 대한 질문 우리가 일상에서 버리는 사물들은 단지 기능을 상실했기 때문에 폐기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물건은 아직 작동하더라도 감정적으로는 이미 쓸모없음의 범주에 포함되어 버립니다. 이는 물질의 파손이나 효용의 종결이 아니라, 그 물건에 대한 애정의 소멸, 혹은 관계의 종료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이 지점에서 중요한 것은, 사물이 폐기물로 분류되기 전까지의 시간입니다. 그 시간 속에는 단순한 사용 흔적만이 아니라, 특정한 감정, 기억, 정체성, 관계가 스며 있습니다. 손때 묻은 찻잔, 어릴 적 사용하던 연필, 고인이 남긴 손목시계 같은 사물들은 기능적 유효성과 무관하게 오랫동안 간직되곤 합니다... 2025. 5. 7.
보이지 않는 재료들, 주목받지 못한 잔여물의 조형성 예술에서 잘 쓰이지 않는 잔해, 먼지, 분말, 부스러기 등을 예술 재료로 보는 시선 예술의 그림자, 잔여물에 주목하다 우리는 예술을 떠올릴 때, 대개 완성된 형태와 인정받는 재료를 먼저 연상합니다. 캔버스, 조각, 광택 있는 나무, 고급 잉크, 곱게 간 안료와 같은 재료들이 그 예입니다. 그러나 모든 창작 행위에는 그 과정에서 생성되는 보이지 않는 물질, 곧 잔여물 혹은 부산물이 뒤따릅니다. 먼지, 가루, 조각, 부스러기, 쓸모없다고 여겨지는 파편들은 완성된 작품 뒤에 감춰지며, 예술의 외부로 밀려납니다. 이러한 잔여물은 대개 청소되고 폐기되며, 창작의 흔적으로는 남지만 조형의 대상으로는 간주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최근 일부 예술가들은 이 보이지 않는 재료들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며, 그것들이 지닌 물.. 2025. 5. 6.
잊힌 기술, 잊힌 감각, 폐기와 함께 사라진 창작 도구들 필름카메라, 자수기계, 타입라이터 등 기술의 쇠퇴와 함께 사라진 감각을 복원하는 예술 사라진 기술은 감각을 데려간다 기술은 진보합니다. 그러나 그 진보는 늘 무언가를 남겨두고 떠나는 방식으로 이루어집니다. 필름카메라, 수동 자수기계, 수동 타자기, 오버헤드 프로젝터 등 한때 일상에 깊숙이 자리했던 도구들은 기술 발전의 흐름 속에서 빠르게 퇴장하였고, 그것들과 함께 작동하던 감각들 또한 자연스럽게 잊혔습니다. 특히 이러한 도구들은 단순한 기능적 매체가 아니라, 손의 움직임, 귀의 민감성, 시선의 집중도 등 다양한 감각을 동원하여 창작자의 신체와 직접 연결되는 특성을 지닌 존재였습니다. 디지털 전환 이후, 우리는 더욱 빠르고 효율적인 방식으로 창작물을 생산할 수 있게 되었지만, 동시에 작업의 물리적 밀도와 .. 2025. 5. 6.
순환이 아닌 전환, 폐기물과 업사이클링 개념을 넘어서기 단순히 되살리는 것이 아니라, 다른 존재로 재탄생시키는 예술 되돌리는 것이 아닌, 되묻는 창작 지금까지 업사이클링은 주로 다시 쓰는 것으로 여겨져 왔습니다. 한 번 사용된 자원을 재구성하거나 재배치함으로써 자원 순환과 지속 가능성에 기여한다는 것이 그 중심 서사였습니다. 그러나 예술의 영역에서 이루어지는 업사이클링은 단지 기능을 보존하거나 형태를 유지하는 순환의 개념을 넘어, 전혀 다른 방향의 해석을 요구합니다. 이른바 전환의 예술은, 폐기물을 그 자체로 다시 쓴다기보다는 완전히 새로운 언어로 다시 말하게 합니다. 물질은 과거의 쓰임을 고백하지 않고, 완전히 새로운 정체성을 얻습니다. 예술가는 물질을 되살리는 것이 아니라, 전혀 다른 세계로 건너가게끔 합니다. 이때 창작은 단지 환경적 실천이 아니라, .. 2025. 5. 5.
불쾌한 예술로서의 폐기물 비위생적 재료가 불러오는 심리적 저항과 감각적 불쾌함과 예술의 경계, 관객 반응에 대한 고찰 폐기물은 왜 불쾌한 예술의 재료가 되었는가? 현대 예술에서 폐기물은 단순한 재료에 그치지 않으며, 사회 구조와 인간 내면의 심리를 드러내는 강력한 상징으로 기능하고 있습니다. 버려지고 부패해 가는 사물들, 냄새나고 오염된 듯 보이는 폐기물들은 관객에게 본능적인 불쾌감을 유발하지만, 바로 그 불쾌감이야말로 예술이 의도한 정서적 충격의 출발점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지저분하다, 더럽다는 반응은 개인의 미적 취향에서 비롯되는 감정일 수도 있지만, 동시에 특정한 사물에 가치 없음 혹은 혐오를 덧씌워온 사회적 시선과 문화적 조건을 반영하는 결과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폐기물은 단순한 물질이 아닌, 미학적 실험의 .. 2025. 5. 5.
창작자의 소비 습관 바꾸기 창작 외부에서 실천되는 생태적 윤리와 삶의 변화 창작만이 전부는 아니다, 삶 전체로 확장되는 생태적 책임 창작자는 종종 작업실이라는 물리적 공간 안에서만 윤리적 실천을 고민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친환경 재료를 선택하고, 업사이클링을 시도하며, 에너지 소비를 최소화하는 등의 노력이 이에 해당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생태적 창작 태도는 작업실이라는 한정된 공간에 머물러서는 완성될 수 없습니다. 창작자가 추구해야 할 생태 윤리는 창작 행위의 순간을 넘어, 일상의 소비, 이동, 생활 방식 속에서도 일관성을 지닐 때 비로소 진정성을 획득하게 됩니다. 예술가는 단지 작품을 제작하는 기술자가 아니라, 세계를 해석하고 새로운 감각을 제안하는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예술가의 삶에서 실천하는 생태적 윤리는 작품의 메시지와 설.. 2025. 5. 4.